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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드라마 ‘추노’ 뇌성마비 ‘선영이’ 하시은의 진짜 모습

만약 ‘선영이’역할을 못 맡았다면 연기생활을 접었을 거예요”



한 번의 등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연기자들이 있다. ‘스타는 하루아침에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이란 표현은 백조의 물밑 애환을 무색케 한다. KBS-2TV 수목드라마 ‘추노’에서 뇌성마비연기로 열연을 펼치며 주목받고 있는 하시은. 한 번의 기회는 수백 번의 도전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터뷰 당일, 스튜디오에 먼저 도착해 있던 하시은이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인터뷰 약속을 해놓고는 ‘누구신지?’ 했던 형국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로 뒤틀린 얼굴 표정만 봐왔으니 그럴 수 있겠지만 기자는 이미 그녀의 프로필 사진도 확인한 뒤였는데 말이다. 평소 단아한 내추럴 메이크업을 주로 하던 그녀가 화보 촬영용 짙은 화장을 하니 또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본인 역시 “나 같지 않아~”라며 어색해한다. 인터뷰, 화보 촬영 모두 처음이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고정 역할이 있는 드라마 출연은 이번이 두 번째다. 6년이나 지속된 무명생활이 갑갑하기도 했을 터다.

“이번 드라마 오디션을 보고 3개월 만에 결정이 됐어요.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죠. 만약 떨어진다면 연기를 아예 그만두려 했어요. 동네 슈퍼마켓 가는 길에 ‘캐스팅됐다’는 작가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어요. ‘마음고생 많았죠?’라는 한 마디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울었어요.”

마음고생이 심했던 만큼 그날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당시를 기억하며 살짝 눈물이 고인다. 그간의 무명생활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짐작이 된다.

“곽정환 감독님과는 다른 작품으로 미팅을 한 적이 있어요. ‘추노’ 오디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뇌성마비 장애인 역할이라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오디션 현장에서는 ‘설화’와 ‘혜연’의 대사로 두 신 정도 읽었는데 ‘그만 됐으니 나가보라’고 하셨어요.”

다른 응시자들보다 짧게 끝난 오디션이 불안하기만 했다. 영화 ‘오아시스’의 문소리 연기를 연습해 동영상으로 찍어오라는 지시만 받고 돌아왔다.

“역할을 맡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다고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연습했어요. 처음에는 오아시스를 보긴 했지만 그걸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었어요. 나만의 ‘선영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실제 뇌성마비는 경우에 따라 각각 다른 증상을 나타낸다. 감독은 ‘오아시스’ 속 인물 보다 더 높은 수위를 원했다. 인터넷으로 뇌성마비와 관련된 자료들을 거의 다 섭렵했다.

“측근 중에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환자 분을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아픈 기준을 정해서 저만의 눈빛과 손짓을 만들어갔죠. 그래서 겁이 났어요.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문소리 선배님과 비교가 될 것이고 사람들이 그만큼 못하다고 손가락질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기우였다. 드라마가 첫 전파를 탄 후 그녀의 이름이 인터넷검색 순위 1위에 올랐다. 미니홈피에는 하루에 만 명 정도의 방문자가 찾아들었고 쪽지와 방명록에는 격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악플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악플을 남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제 연기에서 희망을 얻었다는 내용이 많아서 참 뿌듯했어요. 제 연기를 보고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는 분도 계시고, 주부 우울증을 겪고 계시던 분이 삶의 의욕을 찾았대요. 처음으로 연기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날이었죠.”
이것은 연기자 하시은에게 데뷔 6년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다.

연기자는 연기를 잘할 때 가장 예뻐 보이는 법
여자 연기자로서 얼굴을 일그러뜨려야 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역할에 대해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었을까? 드라마 내에서 비중도 그리 크지 않은 역할인데 말이다.

“첫 연기를 침을 흘리면서 했어요(웃음). 추하게 찍혔지만 괜찮아요. ‘이선영’이란 역할에 연민도 생겼고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잘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 캐릭터라고 판단했어요. 제 아버지로 출연하는 김응수 선배님께서 첫 촬영 때 분장실에 오셔서 ‘연기를 잘하면 무조건 예뻐 보인다’고 용기를 주셨어요.”

시청자뿐만 아니라 함께 촬영하는 동료 배우와 촬영 스태프들은 그녀의 연기를 보고 안쓰러워한다. 그만큼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촬영장에선 귀염둥이예요. 감독님이 오시면 ‘어디, 제대로 된 얼굴 좀 보자’고 하시곤 해요. 분장하지 않으면 인사를 해도 잘 못 알아보세요(웃음).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안절부절못하세요. 성동일 선배님께는 칭찬도 들었어요. 그런 연기 가르쳐주는 학원이 따로 있냐고요(웃음).”

장애 연기의 가장 어려운 점은 말과 행동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사를 하다 보면 몸이 정상이 되곤 한다. 편집하기 어려운 연기라 감정을 잡고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한다.

“그래도 처음 연습할 때보다는 괜찮아요. 그때는 가만히 있어도 입이 점점 틀어지더라고요. 턱이 너무 아파 2주 동안 쉰 적도 있어요. 데뷔 후에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길이 과연 내 길인가’라는 생각에 많이 울고 힘들었죠.”

캐릭터상, 대사보다는 몸으로 표현하는 신이 많아서 다친 적도 많다. 하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연기했다.

“팔꿈치를 책상에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 장면이었어요. 아픈 줄도 모르고 몇 번을 내려쳤죠. 촬영이 끝나고 회식을 하는데 아파서 소매를 걷어보니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시퍼렇게 멍이 든 거예요. 사람들이 어디서 맞고 왔냐며 다들 놀라셨죠. 근데 나중에 방송 나온 걸 보니 소리만 나왔더라고요(웃음). 융통성이 없었던 거죠.”

이제 못할 연기란 없다
그녀가 연기하는 ‘이선영’은 남자의 출세를 위한 정략결혼에 이용당했지만 자신에게 처음 온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역할이다. 냉정하기만 한 남편을 향해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선영이가 울 때마다 솔직히 화가 나고 이해가 안 됐어요. 전 사랑에 목숨 거는 여린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남편에 대한 감정은 알지만 밝게 웃으면서 촬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결국 그녀의 깊은 애정이 남편을 변화시키지 않을까요?”

선영이는 극본을 쓴 천성일 작가의 애정과 공이 많이 들어간 캐릭터다. 때문에 대본 분석을 할 때부터 배우와 작가가 치밀하게 상의해 한 신, 한 신 완성돼 갔다.

“작가님이 다 이끌어주셨어요. 제가 연습한 동영상을 보시고 너무 힘든 걸 시켰다고 자책하기도 하시더라고요.”

선영이의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시청자들도 많다. 네티즌들은 구미에 맞게 앞으로의 시나리오를 예상해보기도 한다. ‘명의 허준이 나타나 재활치료로 병을 낫게 해준다’, ‘초반에 송태하가 거짓으로 다리를 절었던 것처럼 선영의 병도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으로 꾸민 거짓이었다’등 말이다. 기발한 발상이다.

“선영이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기대는 안 하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녀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게 진짜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하시은의 아름다운 본래 모습은 차기 작품에서 기대해봐야 할 듯하다. 그녀가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드라마 ‘파스타’에서 공효진이 연기하는 털털하고 발랄한 역할이다.

“‘파스타’를 즐겨 보는데 공효진씨가 연기한 여주인공 역할이 탐나더라고요. 제 실제 성격과 비슷해요. 주위 사람들이 저보고 약간 어수룩하고 엉뚱한 4차원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제 연기자 하시은이 못할 연기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몸으로 가장 힘든 연기는 단련돼 있기 때문에 겁날 것 없단다. ‘드라마 속 선영이’가 내면의 여성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면 ‘현실 속 하시은’은 배우의 내면 연기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겉보다 속이 꽉 찬 연기자 하시은의 씩씩하고 당찬 발걸음을 따라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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