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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진짜역사 | Posted by 졸당16세 2011. 3. 1. 10:45

국군 창설 초창기 자료


 

대한민국 국군(大韓民國 國軍, Republic of Korea Armed Forces)은 1948년에 창설된다.

우리국군은 광복군 간부가  수뇌부를 이어받는 모습이다 

군정시대는 윤동열 장군이 정부수림후는 이범석 장군이 국방장관을 맡는다


창설될 당시 국군의 모든 지휘권은 미국에 있었으나 1992년 지상군 사령부에 대한 지휘권,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양되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12일에는 전시작전통제권도 국군에 이양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27일, 이명박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12월로 연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이유는 2010년 3월 26일 대한민국 해군 함정 천안함 이 서해 백령도 부근에서 북한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반잠수정에 의해 침몰된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재연기는 없는 것으로 하였다.

또한 전작권 전환 시기 조정에 맞춰 필요한 실무 작업을 진행하도록 양국 국방장관에게 지시하기로 하였다.

이것으로 광복 이래 미군이 가졌던 한국의 전작권은 완전히 국군으로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되면 한국군 합동 참모본부 (합참) 으로 전작권이 전환되며 미국 한국사령부와 같이 2개의 전투사령부가 전시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군사 학교 개관]

한편 군 장교 양성 기관인 사관학교   군사영어학교는 1946년 2월 27일 태릉으로 이전하여 남조선국방경비대(南朝鮮國防警備隊)의 창설과 더불어 폐교될 때까지 약 110명 (일본육사출신 12명, 학병

출신 72명, 지원병출신 6명, 만주군출신18명, 중국군출신 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들은 교육 기간이 한 달 남짓한 단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교 이전의 군사 경력과 불타는 애국충정으로

모든 난제를 극복하고 군의 창건과 그 후의 발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군사영어학교가 해체된 이튿날인 1946년 5월 1일 군사영어학교에서 임관하지 못한 학생 60명과 경비대 각 연대의 사병 중에서 2~3명씩 선발된 28명 등 모두 88명을 제1기생으로 하여 조선경비사관

학교(朝鮮警備士官學校)가 개교하였다. 

오늘날 육군사관학교의 개교 기념일이 5월 1일로 된 것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초대 교장으로 이형근(李亨根) 참령이, 부교장과 교수부장 및 생도대장 으로 장창국(張昌國) 부위가 각각 취

임하였다. 

이 때부터 군사적 응용 과목에 대한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전술 훈련과 지휘 통솔법 과목을 보강하는 등 조선경비사관학교는 정규사관교육을 지향하였다. 대한

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기 직전까지 배출된 제1기에서 제7기까지의 약 1천 8백여 명의 사관후보생들은 기별에 따라 최단 45일 부터 최장 6개월 정도의 교육을 받은 후 임관되었다. 

이 기간 중 입교한 대부분의 사관후보생들은 과거에 군사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거나 현역 장병 가운데 선발 되었기 때문에 이들이 받은 짧은 교육 기간에 비해 교육 성과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제5

기생과 제7기생은 민간인 출신이어서 신병교육훈련이 교육 기간의 반 이상 소요되어 교육기간이 6개월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이들 사관후보생은 모두가 불타는 애국충정과 건군의 초석이 되고자 하

는 사명감에 넘쳐 며칠간의 교육에 해당하는 분량을 하루에 소화해 내는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조선경비사관학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즉 1948년 9월 5일, 국군의 창설과 동시에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되면서 교육 기간이 다소 연장되었다. 실제로 제8기는 22주, 제9기는 23주의 교육

훈련을 받았다. 교육 내용도 점차 내실을 기하게 되어 제식훈련, 화기훈련, 기본 전술훈련 외에 국사, 영어 등의 대학교육 비중도 점차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록 6개월에 이르는 교육훈

련이라 할지라도 그 질은 객관적인 측면에서 볼 때 결코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육군사관학교 전신 조선경비  제일연대 우리 대한민국 국군의 모태입니다.

윤동열 장군 광복군 참모총장 을 역임하고 미군정당시 최초 국방장관 모습이 보입니다.



국군창설 최초 열병식 장면 입니다.

이자료들은 아주귀한 자료들로서 우국군의 역사를 증언해주는 소중한 재산입니다.

 

대한민국수립 최초 국방부 장관 겸 국무총리 이범석 장군과 우리국군

조선경비학교 1기 2기생도 의 마크 OTS 1~2기 생도들만 달고있습니다.

                

간부 훈련학교가 아니고  사관 훈련학교 라고  사진에 똑똑히 나와있다.

국방자료에  간부 훈련학교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사관 훈련 학교였다.

초창기 우리군이 입은 복장은 일본군 복을 그대로 입고있다 뒤에 미군 군복으로 바꿔어입었다.

자료 재공은 미국의  성명미상 우리교포 한분이 제공 하여 주었습니다. 위에있는자료는 국가기록원에도 없는 자료임!

 

1951년 7월 열렸던 육군 병참학교 졸업식 장면이다. 훗날 박정희 전 대통령 밑에서 중앙정보부를 이끌었던 이후락 정보부장은 52년 백선엽 참모총장이 지휘하는 육군본부에서 병참을 총괄하는 병과장으로 있다가 준장으로 승진했다. 병참을 비롯한 공병·수송·의무·정훈 등 대부분 병과의 병과장이 이때 함께 장군에 올랐다.

자료출처 [국가기록원]

6.25동족상쟁이 우리군의 발전과  신무기 개발을 앞당기고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을 최연소 나이로  육군참모총장이되었다

당시 31세로 세계역사상 유래가 없는 최연소 30대 총이다

6.25 전쟁당시 우리군 령관급 장교를 무더기로 장군으로 진급 시킨 백선엽장군의 배짱이 참좋았다

이유는  미군들에게 기죽지 말고 할일 하라고 그리했다는 군요

[여기 까지만 하겠습니다 이후의 자료는 여러곳에 있으니까 굳이 여기서 더 기술할 필요가 없는것 같아서 이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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