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혁]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古淳是國)이 있었으며, 이어 가야 영역에 속하였다가 신라의 세력권에 들
어 거타주가 설치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뒤 685년(신문왕 5) 전국을 9주로 개편할 때 청주(菁州)를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 강주(康州)로 고쳐졌다가 혜공왕 때 다시 청주가 되었다. 고려 초에 다
시 강주로 불리었고,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392년
(태조 1)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 진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고
종 32) 23부제 실시에 따라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어 도
청소재지가 되었다. 1931년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39년 도동면과 거평면을 편입하여 진주읍이
부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 49년 시가 되었고 82년 진양군 일부를 편입
하였다. 95년 시군 통폐합에 따라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99년 현재 1개 읍, 15개 면, 21개 동
을 관할한다. 1개 읍 은 문산 이다. 주변 군사기지는 사천 공군훈련비행단 문산
공군 교육사령부가 있고 육군은 향토사단 소속의 1개 대대가 있다.
[자연환경]
시의 서북쪽에는 우리나라의 명산인 국립공원 지리산이 든든한 배경이되 겨울에는 따뜻하고
폭설을 막아주어 눈 피해가 전혀없고 여름에는 폭우를 막아주어 참으로 복 받은 땅이라 아니할 수
없는 고장이다.
시의 주변산들은 북으로 집현산 동으로 월아산 남으로 와룡산 서쪽에는 봉명산 등이 해발고도 7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그 중앙에 남강(南江)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면서 평지를 이룬다. 덕천
강(德川江)·경호강(鏡湖江)·양천강(陽川江) 등이 남강으로 유입되며 남강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분포한다. 남서부에는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공급 등을 위하여 1970년대에 건설된 남강댐과 인공호수
인 진양호가 있다. 기후는 온난다습한 해양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3.1℃, 1월평균기온
0.5℃, 8월평균기온 25.5℃이며, 연강수량은 1568㎜로 풍족한 강수량으로 물이 풍족하다
[산업·교통]
총경지면적 1만 6315ha 가운데 논이 1만 595ha, 밭이 5756ha로 경지율은 24.6%이다. 농업은 대부분
남강유역 평야에서 이루어지는데, 농산물로는 쌀·참마 가 주로 생산되고, 초전평야 단목평야 등에서
는 참외·오이·수박 등의 채소와 파프리카 피망 가지 호박등의 과채류·화훼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특산
물로는 비봉산과 복호산등에서 재배하는 산딸기·배·복숭아·밤·단감 등과 목단·잎당귀 장생도라지 등의
약용작물도 생산된다. 대나무가 많아 죽세공품 생산도 활발하다. 공업은 진주상평공업단지를 중심으
로 제지공업·섬유공업 등이 이루어지며 한국 최대의 농기구생산공장인 대동공업사가 주약동에 있었지
만 그당시 시장의 무지로 타지역으로 이전했다. 교통은 순천∼부산간의 남해고속도로가 시의 동남부
를 지나고, 철도는 경전선과 진주선이 있다. 목포·부산·고성·사천 ,합천 등을 잇는 국도가 사방으로 연
결된다.
[사회·교육]
비교적 넓은 경작지와 온난한 기후 등으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조선 초기에 이미 인물의
출중함과 물산의 풍성함이 영남제일이라 하였다. 민중들의 의식수준도 높아 여러 차례 의병이 일어났
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진주향교를 비롯하여 도동서원·평천서원·임천서원·신당서원 등이 있었
고,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896년 경상남도공립소학교가 세워졌다. 1999년 현재 초등학교 51개교, 중
학교 20개교, 고등학교 21개교가 있으며,그중에 경남과학고1개교 경남체육고 1개교가 있다 국립종합
대학인 경상대학교 국립 진주교육대학교·국립 진주산업대학교·등 국립대학이 3개교 진주보건대학·국
제대학·기술대학 등의 종합대학이 3개 고등교육기관 및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민속행사로는 해마다
10월 에 열리는 [남강유등축제][개천예술제]가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진주검무 오광대놀이·
소싸움·유등놀이 등이 있다.
[문화재]
진주성(사적 제118)과 촉석루(경상남도문화재자료 8)를 비롯하여 서장대(경상남도문화재자료 6)·북장
대(경상남도문화재자료 4)·창렬사(경상남도문화재자료 5)·논개사당·호국사 등 진주대첩의 유적이 있
다. 진주성내에 국립진주박물관에 중완구(中碗口, 보물 858)·현자총통(玄子銃筒, 보물 885)·차륜식토
기(車輪飾土器, 보물 637)와 망경동(望京洞)에 단성석조여래좌상(丹城石造如來坐像, 보물 371), 이반
성면(二班城面) 용암리(龍巖里)에는 용암사지부도(龍巖寺址浮屠, 보물 372)가 있다. 분묘 유적으로 진
주평거동고려고분군(사적 164)·진양오방산조선조고분군(경상남도기념물 41)·양정공하경복묘(경상남
도기념물 53)·진양효자리조선조팔각형고분군(경상남도기념물 42)·진주옥봉고분군(경상남도기념물 1)
등이 있다. 그 밖에 김해김씨비각(경상남도유형문화재 67)·촉석정충단비(矗石旌忠壇碑, 경상남도유형
문화재 2)·동강선생문집책판(東岡先生文集冊板, 경상남도유형문화재 162)·월아산 청곡사 삼층석탑(경
상남도유형문화재 5)·청곡사대웅전(경상남도유형문화재 51)·집현산 응석사 대웅전(경상남도유형문화
재 141)·고산암석조 비로자나불좌상(古山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 경상남도유형문화재 236) 등이 있다.
[진주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 하나 용두산에 관한전설]
남해고속도로 진주IC에서 문산방향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문산입구에 영천강 옥산교에서 왼쪽을 보면
용머리 모양의 산(소문리775-1번지외)이보이는데 이것이 용두산이다. 아주 먼 옛날 문산에는 한 신선
(神仙)이 살았다. 신선은 문산사람들을 어떻게 잘살게 할까하고 궁리를 하다가 용을 타고 용궁(龍宮)의
용왕(龍王)을 만나러 나섰다. 신선은 용머리에 올라 앉아 이제막 하늘을 오르려는데, 새벽 일찍 빨래를
나온 한 처녀(아낙네)가 빨래를 하다말고 잠시 하늘을 보니 백발노인이 용머리에 올라앉아 하늘을 오
르고 있었다. 깜짝놀란 아낙네는 엉겁결에"어떤 영감이 용을 타고 하늘을 올라간다"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용이 놀라 하늘을 오르다 말고 머리를 땅에 처박고 말았는데 순식간에 용의 형상은 온데간데
없이 하나의 산으로 변해 버렸고, 그 허리는 처녀가 빨래하던 자리에 떨어지더니만 잘려 버리고 말았
다. 신선은 어이가 없다는듯 "아뿔싸! 용머리가 10리만 더 뻗었더라면 문산은 참으로 큰 고을이 되었을
것인데..."하며 탄식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원래 용두산은 용허리로 문산을 안아 10리 밖으로 뻗
어야 큰 고을이 된다고 하였고,문산은 예로부터 신선이 놀던 곳이라 남산에는 언제나 학이 모여 들었
다 한다.앞으로는 금곡을 내다보며 뒤로는 금산과 더불어 사는 고을로, 또 다른 용두산의 전설은 용이
산을 끌어오다 주저 앉았는데 용두산을 끌어와 남산과 연결시키기만 했더라면 한 나라의 수도가 될
자리라고 한다.
[시민 등산]
진주시에는 선학산 비봉산 망진산 복호산 등이 바로 옆에있어 가벼운 산책겸 등산이 용이하다 해발
200미터 안쪽으로 노약자나 어린아이들 쉽게 오를수가있다 특히 망진산은 봉화대가 설치되어있고 전
망이좋아 시내전역을 관망하는곳으로 적당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