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외사(劫外寺·사진). 다름아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찰이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자리잡은 겁외사는 불교의 자비정신과 성철 스님의 끝없는 수행정신 및 무소유의 삶을 기리게 된다. 겁외사는 마침 그가 남긴 법어처럼 산과 물이 자연스럽게 엮어낸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리산에서 발원해 진주 남강으로 스며드는 경호강이 만들어낸 산과 들이 어우러진 이 곳은 고려말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처음으로 재배했던 ‘문익점 목화 시배지’와 조선시대 거유(巨儒)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려 세운 덕천서원과 세심정 등이 있는 유서 깊은 지역이다.
경호강변 3000여평(12500㎡)에 모두 52억여원의 예산으로 건립된 겁외사는 대웅전과 쌍검당(雙劒堂)이란 이름의 선방, 요사채인 정오당(正悟堂), 입구를 차지하는 벽해루(碧海樓) 등을 갖췄다. 겁외사 위쪽으로는 안채, 사랑채, 유품전시관 등 3채의 한옥이 들어서 성철스님의 치열했던 수행정신을 소박하게 드러내 주는 생가가 복원됐다. 안채는 성철 스님의 영정이 안치돼 일반인들이 생전 모습을 볼 수 있게 했으며 사랑채는 외부인이 머물 수 있는 숙소로 사용된다.
유품전시관에는 말년에 머물렀던 해인사 백련암에 보관중이던 누더기 가사와 장삼, 지팡이, 덧버선, 고무신, 육필원고 등 스님의 체취가 담긴 유품이 옮겨져 왔다. 전시관은 또 성철스님의 탄생과 출가 열반에 이르는 수행의 발자취를 설명하는 ‘기대’ ‘수행’ ‘이해’ ‘깨달음’ 등 4부분으로 이뤄진 게 특징. 겁외사와 복원된 생가는 성철 스님이 속세에서 딸로 인연을 맺은 불필 스님이 이끌고 있는 문도회에서 관리한다. 성철스님은 1912년 4월 묵곡리에서 태어나 25세까지 이 곳에서 결혼하고 농사짓는 범부(凡夫)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농사보다는 인간의 근원과 동서고금의 고전(古典)에 더욱 관심이 많았던 스님은 우연히 탁발승이 시주에 대한 보답으로 건네준 중국 당나라 고승 영가(永嘉)스님이 지은 ‘증도가(證道歌)’를 읽은 뒤 큰 깨달음을 얻고 홀연히 집을 나섰다. 1936년 불교계에 입문한 뒤 해인총림 초대 방장을 거쳐 1981년 불교 조계종 종정에 취임했으며 93년 11월4일 해인사 퇴설당에서 열반했다
성철스님생가를 관람하고 단성면 남사리를거처 대평면을돌아 진수대교로 진주로 돌아온다
진양호전경 |